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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회 종근당 예술지상

회화의 시간,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은 

 

김노암

시간이 우리를, 예술가들을 사로잡는 것, 아니 우리가 시간에 포획되는 것은 매력적이다. 흥미롭고 마술적인 비전과 이미지가 회화 예술의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회화 이미지와 만나 시간은 그 영원할 것 같은 운동을 멈춘다. 우리가 배워왔던 예술의 준칙은 형식과 내용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도달하기에 너무도 높은 목표이다. 예술가들은 그곳에 도달하는 도중에 자신의 예술사를 기록하고 종료한다.

 

미술 현장, 또는 현장 미술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미술계나 미술판이란 말 보다는 뭔가 지적이고 비평적 개념이 들어간 인상이다. 길거리에서 시민운동,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이 성장하던 시기에 미술계에서 자주 사용된 용어이다. 현장은 현장성, 당대성, 지금 바로 여기라는 실존적 뉘앙스를 품고 있으며 당대의 세계관과 인간관, 예술관, 생활의 태도가 그 안에 녹아 있다. 

 

종근당 예술지상 기획전에서 우리는 국동완, 박미라, 한지형 세 작가의 회화를 통해 현재의 미술 현장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세 작가의 활동과 작품을 통해 한국 현대 회화의 한 가운데에서 새로운 세대의 회화를 만나게 된다. 시대마다 미술문화의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변해왔다. 종근당 예술지상을 통해 소개해온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한국현대미술의 현장에서 회화가 어떤 모습으로 그리고 어떤 에너지를 갖고 역동적으로 표현되어왔는지 경험했다. 높은 수준의 조형성과 예민한 감각과 감수성, 깊은 통찰과 사유가 작가마다 독특한 개성으로 표현되어왔다. 이들이 창작에 매진하던 시기는 예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또한 큰 위기와 기회, 새로운 변화가 역동했다. 우리는 작품과 전시를 경험하며 매순간 예술이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 어떤 주제의식과 감성을 담아내는지 살펴본다.   

 

눈이 하나인 사람들의 마을에서 눈이 둘인 한 사람이 겪는 이야기는 익숙한 우화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예언자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예언자가 겪는 고통은 익숙한 서사다. 미리 앞서 보는 자라는 신화는 예술계에 뿌리 깊다. 직관, 통찰, 예감은 미래의 눈과 앎을 현재로 끌어당겨 사용하는 것과 같다. 

 

2025년 종근당 예술지상은 단지 현재만이 아니라 2012년 출범하던 시기 이후 매 시기마다 특별한 경험의 시간과 조형적 모험의 연대기를 기획자들과 작가들이 함께 만들어 왔다. 긴 시간을 염두하지 않는다면, 매사 모든 일이 불안정하고 운에 달린 것으로만 보이게 된다. 왜 선사인들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간 곳에 암각화를 남겼을까. 일종의 타임캡슐처럼 영원성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 더 먼 미래의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자신들이 겪은 삶과 운명을 전달하고 이해시키기 위한 것은 아닐까?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시대의 공적인 과거와 어떠한 유기적 관계도 가지지 않는 일종의 영구적인 현재 속에서 살아간다. 또 그런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는 과거와 미래가 모두 현재로 수렴되어 들어온다. 모든 예술적 질문과 해답을 현재성 안에서 해결해야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현실의 중요한 사안과 현상에 대해 그 역사적 배경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경우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망각하고 직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새로운 주제와 표현형식을 모색하는 작가들은 당연하게도 이러한 전환기의 혼란과 무질서의 시기를 반복해서 경험한다. 강물이 바다와 만나면 바로 융합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긴 길이와 넓은 면과 깊이와 폭과 시간을 통해 담수와 해수가 아주 서서히 하나가 된다. 창의와 경이는 담수와 해수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색과 밀도와 속성이 마구 뒤섞이는 혼돈의 현장에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이상적인 균형을 찾아간다. 우리는 당대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그 개인과 사회, 자연과 문명, 정신과 세계를 읽는다.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종근당 예술지상은 매년 과거를 반복하는 연례행사가 아니라 매순간 살아 숨쉬고 일상과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공감하면서 새로운 인식과 비전을 구상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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