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시간
김노암
회화란 무엇인가? 나는 회화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회화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고 어떻게 느껴질 수 있는가? 느낄 수 없는, 느끼지 못하는, 느낌을 잃어버린 것들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에는 존재했을지도 모르지만. 회화는 고독한 사람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 이 고독은 일상의 감상적 고독을 초극하는 존재론적 의미에서의 고독이다. 본질적으로 창작이란 극히 개인적이며 고독한 활동인 것이다. 작가 개인의 정신과 운명에 더 영향을 받는다. 창작 과정에 일군의 화가는 전통을 따르고 또 다른 그룹은 전통을 거부한다. 화가들 저마다의 창조의 관습과 문화적 코드에 대한 수용과 반발의 과정을 통해 시각을 더욱 유연하게 하고 문화의 질과 양을 풍부하게 만든다. 회화란 한 작가의 정신과 노동의 몰입과 융합의 결과물이다. 모든 창작의 순간이 정지된 또는 동결된 것은 죽음에 가까운 것이다. 생동하는 창작자의 운동이 점차 소진되거나 갑자기 종결되면 회화의 탄생이란 작가의 창조력의 죽음, 동결인 것이다. 그러나 관객(수용자)은 바로 그렇게 종결된 순간에서 시작되어 확장하는 감응을 통해 작가가 겪은 운동, 경험을 거꾸로 수행한다. 관객에 의한 새로운 창조적 해석이 벌어진다.
회화는 존재 그 자체로 회화의 의미를 증언하고 있다. 지난 시기 많은 미술가들이 있어왔고 무수한 그림이 창작되었다. 그 만큼 수많은 가치와 의미가 생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이상의 많은 작가와 작품이 망각되고 무의미의 영역에 들어서기도 했다. 무언가를 기억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망각의 운동이 더욱 강렬해진다. 미술사란 망각의 역사에 더 가깝다. 현재 창작과 전시와 감상으로 촘촘하게 짜여지는 우리들의 각고의 노력과 실천이란 곧 시간 속에 스러져가는 예술의 숙명, 무수한 망각이라는 준엄한 현실에 대한 저항인 셈이다.
사람들은 시간의 감각은 상대적이며 일종의 환영이라고 주장한다. 예술가들의 시간과 평범한 생활의 시간은 분명 다르게 인지된다. 어린 아이의 시간과 노년의 노인이 느끼는 시간이 다르듯. 현재의 밑에는 과거가 무수히 중층적으로 쌓여있고 미래는 이러한 거대한 과거를 품은 현재들이 나열되며 진행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회화란 이러한 현재들의 집합이고 운동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가들이 표현하는 것은 일상의 기억이나 현재가 아니라 현재와 과거, 미래가 교차하는 어떤 순간이다. 이러한 순간을 다루는 세계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순수예술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회화는 다른 세계를 발견하는 일이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성찰하는 영혼의 여행이자 성장통이다.
회화는 어떤 기술적이거나 물리적이고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것을 향한다. 회화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가의 현실을 재현하고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재현하고 있는 현실이 보편적이며 만인이 공감하고 동의하는 현실인지는 더 많은 시간과 관계, 의미의 비평적 해석의 과정을 거쳐서 드러날 것이다. 회화의 진정성은 각자의 세계와 그들이 공통으로 속한 현실세계가 얼마나 잘 연결되어 있는지에 달려있다.
회화는 현실을 쫓는다. 동시에 꿈꾼다. 그리고 표현한다. 회화는 꿈과 현실, 그 사이를 오고가며 재현한다. 수많은 회화이미지에 사람과 삶과 현실과 초현실이 다양한 비율로 배합되어 있다. 우리가 꿈에 쉽게 도취하는 이유는 아무리 행복하고 완전한 현실 또는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현실을 만나더라도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완전한 실재(Reality), 이상적 현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욕망과 그 욕망의 충족이 만나는 현실은 초현실 또는 꿈과 붙어있다. 회화는 예술가의 노동을 통해 현실과 초현실을 동시에 포착하려고 한다.
회화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는 그림을 통해 어떤 영감을 받고 성찰하는 사건과 조우할 수 있다. 상처로 고통받는 현실을 잊고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회화에 몰입하기도 한다. 모든 그림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묘하며 신비로운 힘이 작동하는 회화는 더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밀어내며 움직인다. 이는 간접경험으로는 만날 수 없는 활동과 경험을 말한다. 현대 회화 분야의 많은 작가들이 존재와 실존의 문제, 자아와 정체성의 문제, 주체와 타자의 문제 등을 전통적인 조형의 어법을 벗어나 보다 형이상학적인 차원으로 접근한다. 이미지는 이러한 존재와 부재 사이의 긴장이 드러나는 표면이다.
작가는 고립된 작업실에서 전력을 다한 총체적이며 집중적인 활동을 지속한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연금술의 진행처럼 질적 비약과 함께 더 생생한 감각과 접촉하게 된다. 지치지 않고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고 기록하는 것은 탈속적인 활동이다. 내면을 향한 운동은 동시에 인간의 세계를 확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안과 밖을 동시에 운동하는 창작자들의 창작 행위가 품고 있는 불가사의한 동시성은 설명할 수 없다.
미술의 역사란 작품의 역사만큼이나 작가들의 역사이다. 거기에는 평범과 비범 사이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재능과 창조력을 불태우는 화가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화가의 꿈과 삶에 대해 우리 자신을 대입시켜보고 공감한다. 우리는 화가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 자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린다. 현재의 우리의 일상과 현실을 떠올리고 마지막에는 죽음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일종의 불멸의 삶을 회화를 통해 상상한다. 시간은 하나의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우리는 회화를 바라보고 화가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통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 마음 속 심연과 마주할 수 있는 자유를 잠시 얻을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