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와 세계는 서로를 비춘다
김노암
종근당예술지상을 통해 우리는 회화의 세계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현재의 회화가 직면한 문제와 한계가 무엇인지 생각하였다. 회화의 한계, 끝을 마주한다는 것은 바로 거기에서 새로운 출발점을 만나기 위함이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도전의 고난과 그 성취를 떠올리며 우리의 상상력을 고취한다. 예술의 현실과 일상 속 예술이 교차하며 서로를 끌어당긴다. 세계의 동서남북과 위아래는 끝이 없다. 한계와 끝은 세계의 끝이 아니라 우리 인식과 상상의 끝을 말한다. 끝은 세계의 몫이 아니라 우리 사유의 몫이다.
누구는 그림과 만나는 것을 작가와의 대화 또는 작품과의 대화로 비유하곤 한다. 또 누군가는 예술과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는 욕망과 결핍의 변증법적 또는 역동적 관계라고도 해석한다. 뭐가 되었든 회화작품을 보는 것은 만남이고 대화이고 세계와 세계가 충돌하고 교섭하고 융합하는 것이다. 단순히 새로운 이미지 또는 형상의 바다를 서핑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 깊이 들어가 존재를 만나고 의식의 바다 위에 존재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불치의 잠수병에 걸린 다이버의 운명처럼 몸을 순환하는 피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경험이다. 그리고 그 경험의 강약과 반복이다.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한가하고 호사로운 취미의 경계를 넘어 멀리 날아간다. 모험이자 도약이다. 우리의 욕망과 결핍은 언제든 일상의 의식과 생활로 되돌아온다는 고민과 걱정을 동반한 채 조금씩 더 나아간다. 이렇게 나아가는 것 이상의 되돌아오는 압력은 그 배수로 증가한다.
우리는 자신의 취향과 생각, 소신대로 사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고결한 성직자도 쉽지 않은 일을 예술가라고 특별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예술의 세계에서 그리고 현실의 삶 한 가운데에서 동시에 살아간다. 회화나 예술을 특별한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망각하고 하나의 일상과 현실로 느끼는 것이 훨씬 더 좋다. 샘이 말라 물고기가 모두 땅 위에 드러나자 서로 물기를 뿜어 주고, 서로 거품을 내어 적셔 주지만,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를 잊은 채 사는 것이 더 좋다는 장자의 이야기처럼. 예술이 현실을 망각하고 현실이 예술을 망각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환경오염과 생태위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류를 시험하는 시절이다. 인류의 적은 과거 야생의 자연에서 문명의 인류 자신이 되었다. 회화는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고 거꾸로 현실이 회화를 재현하기도 한다. 현실보다 아주 일찍이 우리에게 존재했던 예술도 있다. 또는 현실과는 아무 상관없는 세계를 사는 예술도 있다. 아주 밝은 빛은 우리의 눈을 마비시킨다. 다른 의미에서 또 하나의 어둠이다. 빛을 모색하기 위해 더 깊고 무거운 어둠과 대결하는 것이다. 세계의 이면, 다양한 얼굴을 하고 등장하는 세계의 얼굴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 선다는 점에서 화가의 정신과 그의 일상은 얼마나 단단하게 단련해야할지 우리의 상상을 훌쩍 넘어선다. 예술과 세계, 회화와 현실은 다르지 않다. 예술은 시시비비(是是非非)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누굴 이기려는 것도 아니다. 예술과 현실은 서로를 비추는 빛이고 어둠이다.
길거리의 흔한 돌멩이마저도 너무도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가만히 있으려는 강렬한 욕망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 정적이지만 속으로는 치열하게 약동하는 화가의 욕망은 어디를 향하는가? 이번 종근당 예술지상 작가들의 주제와 회화는 풍요로운 경제발전과 풍성한 문화적 향유를 즐기는 오늘의 세계를 한 꺼풀 벗겨보면 드러나는 또 다른 세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들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회화가 세계와 만나는 순간들을 경험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