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현실과 초현실의 사이
김노암
회화가 현실을 재현하고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재현하고 있는 현실이 보편적이며 만인이 공감하고 동의하는 현실인지는 더 많은 시간과 관계, 의미의 비평적 해석의 과정을 거쳐서 드러날 것이다. 현실은 마치 미로처럼 있고 그런 현실과 관계를 맺는 모습 또한 다양하다. 미로 안에 빠져있는 사람, 미로 밖 입구에서 머뭇거리는 사람, 아니면 미로를 관조하는 사람. 회화의 진정성은 각자의 세계와 그들이 공통으로 속한 현실세계가 얼마나 잘 연결되어 있는지에 달려있다.
2013년 종근당예술지상 선정 작가인 류노아, 심우현, 안두진의 작업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보면 20세기 중남미의 문학경향(기법)인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 또는 환상적 사실주의에 인접한 회화로 볼 수 있다. 미술사적으로 초현실주의를 경험한 시각예술분야에서 회화와 문학의 결합은 그리 새롭지도 또 불편한 모습도 아니다. 마술적 사실주의란 현실의 모습을 닮았지만 동일하지 않은 풍경의 세계는 관습과 관행, 편견과 학습된 시각에 혼란을 주며 낯선 감정과 시각을 경험하게 한다. 사회비평의 미학적 번안의 예일 수도 있다. 고도로 복잡한 시각적 정보와 언어의 그물망 속에서 전통적인 그림이미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오래전 회화가 갖고 있었던 세계와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기존 현실의 중력을 거슬러 솟아오르는 창작은 초현실적이다. 동시대 회화는 자연스럽게 그 힘을 빌려온다.
원로나 중견작가를 제외하고 당대 우리 미술계의 젊은 작가들의 회화를 살펴보면 단순화하고 기계적인 이해일 수 있다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형식 또는 스타일에 있어서 두 경향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화면에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사건과 형태들, 이미지가 복잡하게 난무하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마치 그리다 만 듯 혹은 잠시 딴청을 피우듯 느슨하고 모호하게, 그리하여 현실의 풍경을 흐릿하게 연출하는 경향이다. 여기서 추상회화는 제외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 미술계의 추상미술이 약화되어 최근 신예미술가들의 회화 경향에서 추상미술작가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고 주목도 덜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원로와 중견작가들에게서 추상회화가 의미 있게 다뤄지고 있으나 젊은 작가들의 경우에는 추상이 회화보다는 개념미술과 연결된 오브제, 설치, 미디어아트 등과 관련해서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추상회화는 개념미술과 연결하여 이해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시기이다.
우리가 꿈에 쉽게 도취하는 이유는 아무리 행복하고 완전한 현실 또는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현실을 만나더라도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완전한 실재(Reality), 이상적 현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욕망과 그 욕망의 충족이 만나는 현실은 초현실 또는 꿈과 붙어있다. 그 맞닿아 있는 경계의 지점에서 우리는 불안하다. 회화는 예술가의 노동을 통해 현실과 초현실을 동시에 포착하려고 한다.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한다. 꿈과 환상에 휩싸인 예술가는 아주 용이하게 현실과 초현실 사이를 넘나든다. 초현실은 흔히 망상이나 비현실, 또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무능력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그런 이유로 배제되고 폐기되는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현실을 넘어서는 세계에 몰입하는 예술가는 일상 현실에서 흔히 이상하거나 괴상한 존재처럼 이해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떤 영감을 받아 성찰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