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무한성과 반복, 그리고 세계의 얼굴
김노암
회화는 기원을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다가오는 힘이다. 회화는 가장 개인적인 사건이지만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작가가 견디고 버티고 토해낸 시간의 특별한 표현이고 기록이다. 내적인 심리적 충만 상태를 지나 성찰적 사유의 운동 속에서 명상의 흔적 또는 이미지가 되면 이 이미지는 스쳐지나가며 소비되는 것이 아닌 오랫동안 바라보고 새로운 경험과 생각을 반추하는 깊은 구조와 울림을 갖게 된다. 설명 가능하고 이해하기 쉬운 회화란 덧없는 것이다. 그것은 지식과 정보에 귀속될 뿐이다. 다른 각도에서 본 일상의 얼굴이다. 회화는 결코 호수나 거울에 반영된 이미지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그 너머에서 세계의 얼굴을 비추는 운동이다. 세상이라는 항구에 영원히 정박할 수 없는 무한의 항해이다.
인식적 또는 영적 도약을 표현한다는 것은 매 순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수많은 긴장과 갈등 속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에서 불완전한 상태를 전제한다. 거기에서 출발해 회화는 자연스럽게 존재, 무한의 문제를 향한다.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잠시 보게 된다. 무한은 자기 모순, 패러독스를 필연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작가들은 평생 고투하며 내적 모순과 갈등의 원인을 해석하고 표현한다. 그 과정은 의식과 무의식, 직관과 이론이 융합되어 운동한다. 이러한 운동이 작가의 성향에 따라서 어떤 이미지 또는 형태를 가지거나, 아니면 형태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드러난다. 이미지와 개념, 직관적 통찰과 이성적 명상이 결합된다.
인식되고 경험된 회화의 감각은 과거가 된다. 그러나 단순히 지나버린 시간이 아니라 마치 썰물과 밀물이 번갈아가며 교차하듯 우리의 시간 감각을 교차하며 과거는 현재, 미래와 혼합된다. 그러면 이미 인지된 회화감각이 마치 새로운 것으로 느껴지고 새롭게 경험되는 세계가 되어버린다. 캄캄한 밤 쏟아지던 비가 멈추면 후각을 폐 속 깊이 채우는 물비린내처럼. 그러나 그 과정은 오랜 시간 긴장과 갈등, 불편과 고통을 수반한다. 그 길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무수한 시간과 사건 속에 파도의 썰물과 밀물처럼 펼쳐지고 응축되는 반복의 무한성 속에 예술적 표현과 흔적이 분명해진다. 근대 이후 예술가들, 현대미학의 관심은 개인의 삶, 의식과 무의식, 개인과 사회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숭고(崇高)이다. 세계이든 내면이든 숭고미가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고 여기에 무한성과 영원성의 문제가 동반된다.
회화는 힘과 긴장, 균형의 해체, 쏠림과 치우침이 있다. 동시에 우리가 기억과 망각의 사이에서 반복해서 만나고 어울렸던 사건과 관계들의 어둡고 무거운 회고(回顧)의 또는 사유의 그림자들이다. 타자와 세계와의 관계를 투명하게 또는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하지만, 작품과 관객 사이에 펼쳐진 안개처럼, 미묘하게 운동하는 모호함과 복잡성을 완전히 걷어낼 수는 없다. 눈을 뜨고 눈을 감을 때까지 타자와 세계와 관계를 맺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자기 자신을 버릴 수도 없다. 작가들은 자기 자신을 규정하고 인식하고 바로 세우기 위해 정체성이라는 화두를 손에 쥐고 있다. 더 예민하고 정교하게 정체성의 문제에 집중한다. 관계와 소통, 대화와 공감을 통해 타자와 균형 있는 공존을 팽팽한 힘의 조화로 구성해내려 한다. 이미지와 이야기는 영원히 되돌아가야 하는 누군가의 초상 또는 세계의 ‘얼굴’이다. 영원한 회귀와 반복의 운동 속에서 영원성에 근접한 미적 형이상학의 세계를 잠시 엿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