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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회 종근당 예술지상

회화의 숨은 길

 

김노암

그 주변들

현대 회화는 너무나 감각적이지만 동시에 너무나 개념적인 예술이 되었다. 높은 수준의 회화는 깊은 사유와 섬세하고 예리한 감각과 모호하지만 풍부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시대와 지역을 넘어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무한히 많은 작가들의 세계가 회화 이미지로 수렴된다. 사람들은 회화 이미지에 개인과 세계, 몸과 마음, 생활과 비전을 비춰본다. 이번 기획전 초대 작가들의 회화적 성취도 이러한 현대 회화의 흐름 속에 있다. 이재훈, 이해민선, 정직성 세 작가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감각과 인식을 투영하고 있다. 그들에게서 회화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에 확장된 또는 파생된 것들의 다양한 해석들로 가득차 있음을 보게된다. 회화 본령의 영역과 그 밖 또는 그 주변의 세계와 사물, 감정과 의식이 삼투하며 하나의 심미적 지평선에 녹아든다. 우리는 비밀스런 회화의 길을 따라 새로운 시각적 경험의 세계로 들어선다. 우리 자신이 회화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존재론적으로 우리는 그 밖에서 관계를 맺는다. 잠시 그 세계 안에 편입되어 동조하게 된다. 회화적인 것과 그 주변의 것들은 개인과 세계의 운명을 회화적인 것을 통해 표상하도록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회화 작품들 가운데 가장 독창적이며 매력적인 작품의 등수를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작가들과 예술성의 객관적 비교 평가도 그 한계가 분명하다. 예술작품이란 시대와 장소, 관람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지기에, 모든 예술적 활동과 현상은 같은 높이의 미적 지평 위에 놓여 있다. 가깝고 공감이 가는 예술과 멀고 낯선 예술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회화 작가들 가운데 자기 자신에 충실하며 독창적인 회화의 깊이를 보여주는 작가들이 우리의 관심과 공감의 중심에 있게 된다.

회화의 숨은 길

현대미술의 스펙터클한 풍경을 보면 회화를 둘러싼 미학적 사유가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형성된 추상미술과 그 이후 다다와 초현실주의, 개념미술 등으로 이어지는 혁명적 변화와 대중의 수용은 현재 우리의 시각예술의 토대가 되었다. 현대 회화작가들은 이러한 미학적 유산을 잘 선용하고 있다. 20세기 초 유럽과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구 미술과 우리 전통의 미술이 만나 충돌하고 융합하면서 새로운 사유와 미감이 표현된 미술이 만들어져 왔다. 그 시간은 우리 미술의 다양한 예술적 도전과 성찰을 거듭해온 시간이었다. 우리 미술문화에서 회화는 그 양과 질에 있어서 가장 한국적인 미감과 인생관과 세계관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그리고 예술이 세계와 현실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 이미지와 이념적 이미지 모두는 크게 보면 몽상적 사유에 기반한다. 독창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몽상적 감각과 비전을 우리는 이번 작가들의 회화 이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창작은 생활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도 승패가 있는 경쟁도 아니다. 예술과 삶은 서로 균형을 잡고 상호 성장을 한다. 회화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세상의 관습과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아주 잠시 맛볼 수 있다. 회화는 지극하고 현묘하다. 우리는 회화 이미지 뒤에 숨겨진 수많은 길을 따라서 작가들의 치열한 감각과 조형의 힘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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